퇴근 후의 시간은 길지 않지만, 밀도 있게 쓰면 하루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대구는 낮의 바쁜 도시 이미지와 달리 밤이 되면 결을 바꾼다. 산복도로 언덕 너머로 불빛이 내려앉고, 골목마다 작은 숍과 술집의 문이 열리며, 시장은 늦은 시간까지 사람을 불러 모은다. 이 글은 대구에서 실제로 몸이 풀리고 마음이 환기되는 퇴근 후 스케줄을 시간대별로 제안한다. 혼자 가볍게 걷는 패턴, 동료와 간단히 한 잔하는 루틴, 주말 전날의 조금 화려한 코스까지, 상황에 따라 골라가며 섞어 쓸 수 있도록 구성했다. 무리하지 않는 동선, 갈아타기 적은 대중교통, 발 편한 신발이 기준이다.
도심에서 퇴근한다면 반월당, 동성로, 수성구청 일대가 기준점이 된다. 이 시간에 가장 먼저 할 일은 뭘 먹을지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호흡을 낮추는 일이다. 앉아서 일한 날은 걷고, 많이 움직인 날은 의자에 앉아 허리를 푸는 식으로 반대로 간다. 대구는 이 선택지가 충분하다.
반월당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교보문고 대구점과 중앙파출소 사이로 바람이 통한다. 여기서 동성로 대로방향을 등지고 종로네거리 쪽으로 걷다 보면 골목 속 카페들이 보인다. 카페를 고를 때는 사람 소리보다 기계 소리가 낮게 깔린 곳이 낫다. 원두 설명이 긴 집보다 의자 간격이 넓은 집이 퇴근 직후에는 더 적합하다. 커피 대신 보리차를 주는 카페가 가끔 있는데, 이런 곳을 만나면 무조건 앉는다. 당을 급히 올릴 필요가 없다면 가벼운 허브 티로 시작할 것. 카페에서 20분만 머물러도 어깨가 내려간다.
반대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날은 국채보상로를 따라 동성로 스파크 뒤편 소로로 들어가 2킬로미터 남짓 도는 산책을 추천한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거리 공연 소리와 섞여 걷기 리듬이 생긴다. 골목 안쪽 문구점과 소형 갤러리를 기웃거리며 걷다 보면 첫날 카운트다운 같은 긴장감이 빠진다. 날이 덥거나 미세먼지가 나쁘면 도심 실내 대안으로는 현대백화점 대구점 8층 옥상 정원이 있다. 흔한 루프톱처럼 시끄럽지 않고 바람이 잘 든다.
수성구에서 출퇴근한다면 수성못 서편 데크를 천천히 한 바퀴 도는 게 좋다. 서편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며 수면 위 조명 반사를 보는 루트가 조용하다. 30분이면 충분하다. 주차는 북쪽 공영주차장이 편하지만, 버스라면 403번, 순환2, 814번이 근접하다. 이 시간대는 조깅족과 사진 동호회가 겹치는데, 데크 끝 구간으로 갈수록 여유가 생긴다. 목이 뻣뻣하면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30초씩 어깨를 내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자세 교정에 욕심내지 말고 숨만 길게 빼면 된다.
퇴근 후 과식은 다음날을 갉아먹는다. 대신, 단백질과 채소를 기준으로 간결하게 먹되, 대구다운 풍미는 놓치지 않는다. 대구의 대표 메뉴가 다 진하고 뜨거운 것만은 아니다. 여름에는 밀면, 겨울에는 온국수처럼 가벼운 선택지도 많다.
동성로에서 부담 없이 자주 가는 국수집은 좌석 회전이 빠르고 조미료 향이 과하지 않은 곳이 기준이다. 잔치국수와 비빔국수가 모두 적당한 간이라면 믿을 만하다. 늦은 시간에도 면 삶는 물이 탁해지지 않는 집이 있다. 이런 곳은 김치가 과일향이 나지 않고 잘 익은 편이다. 그날의 컨디션이 애매하면 잔치국수와 만두 3개 정도가 한계선이다.
매콤함이 당긴다면 동성시장 방면으로 내려가 납작만두와 마늘 떡볶이를 나누어 먹는 방법이 있다. 여기서는 꼭 공유 접시로 주문한다. 납작만두 1인분과 떡볶이 국물 몇 숟갈이면 충분하다. 맵기 조절이 가능하니 첫 숟갈은 국물부터 찍어 맛을 본다. 마늘 향이 과하면 다음날 속이 더부룩해지니, 고추가루보다는 실파를 더해 달라고 조용히 부탁하면 대체로 들어준다.
골목 숯불구이집을 택한다면 목살 200그램과 구운 채소, 공기밥 하나를 두 사람이 나눠 먹는 식으로 간다. 대구는 불맛이 강한 집이 많아 밥 없이도 만족감이 있다. 다만, 냄새가 옷에 밴다는 점을 감안해 외투는 입구에 맡기거나 옷걸이에서 떨어진 벽 쪽에 거는 편이 낫다. 다음 일정이 카페나 서점이라면 향이 강하지 않은 메뉴가 유리하다.
혼자라면 편의점 삼각김밥과 컵국물도 솔직한 선택이다. 대신, 바로 서서 먹지 말고 근처 대구 스웨디시 공원 벤치에 앉아 천천히 씹는다. 앉은 키가 낮아지는 순간, 몸은 식사를 제대로 인지한다. 10분이라도 앉아서 먹는 것과 급히 서서 먹는 것은 다음날 체감 에너지에 차이를 만든다.
하루의 방향을 결정짓는 건 이 시간이다. 에너지가 남았으면 몸을 쓰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감각을 채운다. 대구는 결과물이 눈에 보이는 활동과 몰입형 감상을 동시에 품고 있다.
대봉동의 공방 거리는 이 시간에도 몇몇 공간이 불을 켠다. 컵 받침이나 가죽 키링 같은 소품 클래스가 60분 컷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는데, 예약이 필수다. 퇴근 전 점심시간에 메시지로 당일석이 있는지 물어보면 의외로 비는 일이 많다. 손을 쓰는 활동은 생각이 멈추고 호흡이 고르게 된다. 단, 접착제나 오일 냄새에 민감한 사람은 환기가 좋은 곳을 택해야 한다.
반대로 음악이 필요하다면 대구 콘서트하우스의 저녁 프로그램을 체크한다. 평일에는 20시 시작 공연이 종종 있어 초반만 듣고 나오는 방법도 가능하다. 전부를 소화해야 한다는 강박은 밤 시간을 좁힌다. 초반 30분, 2악장까지 듣고 나와도 남는 게 있다. 좌석은 2층 측면이 가격과 음향의 밸런스가 좋다. 막차 시간을 감안하면 공연 종료 10분 전에 조용히 나오는 관객도 드물지 않다.
서점은 변함없는 피난처다. 교동의 중형 독립서점은 21시까지 문을 여는 날이 많다. 두 권을 동시에 집지 말고 한 권만 골라 서너 페이지를 소리 없이 훑는다. 페이지를 끝까지 읽지 말고 중간 문단에서 멈추는 습관을 들이면, 다시 읽을 동력이 생긴다. 수필집의 2쪽, 시집의 1편, 여행서의 사진 3장 그 정도가 적당하다. 책을 덮고 노트를 열어 오늘의 한 문장을 적어보면 마음이 정리된다. 적을 노트가 없으면 폰의 기본 메모장에 날짜만 남겨도 충분하다.
대구의 여름은 길고, 겨울은 찬 공기가 맵다. 회복은 온도와 습도를 다루는 일에서 시작된다. 땀을 뺄 것인지, 수분을 채울 것인지,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결정한다.
동네 목욕탕은 과장 없는 힐링이다. 수성구 범어동 일대는 깔끔한 소형 목욕탕이 몇 곳 남아 있다. 21시 이후에는 사람 수가 줄어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쓰기 좋다. 뜨거운 물 3분, 쉬는 시간 2분, 미지근한 물 3분, 냉탕 30초 이렇게 한 세트를 두 번만 돌려도 혈관이 잠잠해진다. 어지럼증이 있는 날은 냉탕을 생략하고 미지근한 물만 사용한다. 샤워실에서 어깨와 승모근에만 따뜻한 물을 집중적으로 한 번 더 흘려주면 자는 동안 어깨 결림이 덜하다.
사우나가 부담스럽다면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나 소형 피트니스의 러닝머신을 쓴다. 시속 5.5킬로미터로 20분, 경사 3, 심박은 120대 중반이 넘지 않게 유지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 뛰고 싶다면 1분 빠르게, 2분 걷기로 6세트만. 끝나고 스트레칭은 햄스트링보다 종아리와 발바닥에 시간을 더 준다. 대구는 걷는 도시라기보다 서 있는 시간이 긴 도시라서 발바닥이 먼저 풀려야 한다.
차분한 밤을 원한다면 수성못 인근 허브티 전문 카페를 찾는다. 카페인이 낮은 루이보스나 캐모마일을 우려 5분 이상 기다린 뒤, 반쯤 식힌 온도로 마시는 게 포인트다. 허브 향이 거슬리면 뜨거운 물만 리필해 향을 반으로 낮추면 된다. 그 사이 오늘의 알림을 전부 지우고, 다음날 꼭 해야 할 일 1개만 메모장 상단에 고정한다. 목록이 길어질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진다.
이 시간대의 대구는 속도가 느려진다. 차가 줄고, 조명은 같은 밝기인데 체감은 한 톤 낮다. 야간 산책은 장소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CCTV가 겹치는 구간, 차도와 분리된 보행로, 벤치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고른다.
동성로에서 북성로 공구골목까지 이어지는 길은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르다. 간판 불빛이 줄고, 금속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여 미묘한 향이 난다. 공구 가게 셔터 앞에 붙은 오래된 광고지와 장부 메모를 보면 도시의 심박이 보인다. 이 구간에서는 이어폰 볼륨을 낮춰 주변 소리를 듣는 게 좋다. 차가 드문 골목에서는 오토바이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리니 안전에 도움이 된다.
수성못 동편 나무데크는 늦은 시간에 조깅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는데, 물가와 너무 가까운 데크는 미끄럽다. 비가 온 날은 특히 그렇다. 데크 대신 호반길 자갈길을 택하면 발의 감각이 깨어난다. 다만, 발목이 약한 사람은 자갈길에서 10분을 넘기지 않는 편이 낫다. 발걸음이 가벼운 날은 못을 반쯤 도는 것보다 짧고 확실한 왕복을 추천한다. 돌아설 이유가 생기면 과감히 돌아서는 것이 밤 스케줄의 완성도를 높인다.
대구은행역에서 수성시장역까지 이어지는 보행로도 조용하다. 주택가를 스치며 지나가는 길이라 소음을 만들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작은 빵집 굴뚝에서 늦게 나오는 빵 냄새를 맡게 되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굳이 들어가지 말고 다음날 아침에 들르는 용도로 남겨둔다. 밤에 먹는 달콤함은 숙면을 흔든다. 이 유혹을 한 번 이겨내면 다음번에는 이상하게 덜 당긴다.
요일마다 도시의 결이 바뀐다. 수요일은 회식이 적고, 금요일은 도심이 늦게까지 살아 있다. 같은 코스를 돌더라도 요일에 맞춰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대구는 목요일에도 공연과 클래스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 수요일에는 조용한 공간이 잘 보이고, 금요일에는 동선 확보가 관건이다.
수요일에는 스터디 카페를 잠깐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업무와 완전히 다른 과목을 40분만 공부하면 뇌의 피로가 이상하게 풀린다. 회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지인은 수요일마다 한자 급수 교재를 펼쳐 2쪽만 본다. 해보면 알겠지만, 성취감과 무관하게 그 날의 긴장이 풀린다. 반대로 금요일에는 정적인 활동에 자리가 잘 나지 않는다. 공방이나 공연이 매진일 때는 곧장 야외로 틀어 산책과 가벼운 식사로 압축한다.
금요일 밤의 선택지는 동성로의 노천 맥주와 수성못의 와인바로 대표된다. 입장이 어려운 날이면 일정은 무너진다. 그래서 금요일에는 예약이 가능하거나 대체지가 가까운 동선을 짠다. 노천 좌석이 없으면 바로 옆 골목의 일본식 선술집으로, 와인바가 붐비면 곧장 디저트 없는 티 전문점으로 넘어가면 된다. 유연한 플랜 B가 금요일 밤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비가 오면 대구는 의외로 매력적이다. 후텁지근함이 사라지고 소음이 눌린다. 다만, 도로가 빨리 미끄러워지기 때문에 차량 이동보다는 지하 연결통로를 잘 쓰는 편이 안전하다.
약속 없이 혼자라면 백화점 루프를 돌며 식당가 대신 지하 식품관에서 간단히 해결한다. 대구의 식품관은 반찬 코너가 강하다. 연근조림, 우엉조림, 닭가슴살 장조림 같은 소분 반찬과 현미 주먹밥 두 개면 충분하다. 자리에 앉아 먹을 수 있는 스탠딩 테이블이 있는 곳을 찾고, 사람들이 붐빌 때는 라면 코너 유혹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 비 오는 날 라면은 최고지만, 이후의 스케줄이 무너진다.
비가 오는 수요일 밤에는 미술관 야간개장을 노려볼 만하다. 대구미술관은 특정 전시에 한해 야간 운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람객이 줄어 그림 앞에서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유리 앞에 서서 빗소리를 등지고 작품을 보면 피곤이 잠잠해진다. 작품 설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고 하지 말고, 본문 가운데 2문단만 읽고 시선을 다시 작품으로 돌린다. 감상은 글보다 눈이 먼저다.
함께 있을 때와 혼자일 때의 도시 온도는 다르다. 두 사람이면 걸음이 느려지고 대화가 생긴다. 세 사람이 넘어가면 의자와 테이블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동성로 골목의 작은 바는 앉을 자리가 6석 안팎인 곳이 흔하다. 두 명은 환영받지만 네 명은 환영받지 못할 때가 많다. 이런 곳에서는 자리 회전이 빠르니 40분 내외로 마시는 흐름이 맞는다. 혼술이면 바 테이블 끝 자리를 선호한다. 주문은 한 번, 계산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사진은 플래시 없이. 작은 룰을 지키면 공간이 편해진다.
동료들과 함께라면 회식에서 1차를 짧게 끝내고, 2차를 서점이나 산책으로 바꾸는 방법이 의외로 호응을 얻는다. 처음엔 모두 어색해하지만, 한두 번 해보면 22시 무렵 해산해 다음날 상쾌하다는 의견이 늘어난다. 팀장을 설득할 때는 성과 이야기를 꺼내지 말고, "지금 얘기가 잘 풀리니 여기서 마무리하면 좋겠다" 정도로 말하면 길게 끌지 않는다.
대구의 밤을 오래 즐기려면 체력과 예산, 이동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두 달만 실험해도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보인다. 첫째 주에는 식비를 줄이고 걷는 시간을 늘리고, 둘째 주에는 새로운 가게를 한 군데만 추가하고, 셋째 주에는 실내 활동을 중심으로, 넷째 주에는 완전 휴식일을 넣는 식으로 분배한다. 몸이 기억하는 루틴이 생기면 주머니 사정도 안정된다.
대중교통 막차는 노선마다 차이가 크다. 순환노선은 비교적 늦게까지 다니지만, 지선은 22시를 넘기며 간격이 벌어진다. 택시는 금요일 22시 이후 대기 시간이 길어지므로 21시 50분 이전에 호출하든지, 23시 10분 이후로 완전히 늦추는 편이 낫다. 중간 시간대는 수요가 몰려 호출이 지연된다. 이 사이에는 아예 한 구간 더 걸어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게 빠를 때가 있다.
예산은 주 4회 외출 기준으로 저녁 1만 2천원, 음료 6천원, 이동 4천원, 활동 1만원이면 하루 3만원 안팎이다. 한 달 12회면 36만원 선. 여기에 사우나나 공연을 두 번 추가하면 5만 - 10만원 정도가 더 든다. 가끔 반짝이는 소비를 해도, 일상은 소박하게 가져가면 전체 평균이 내려간다.
여름에는 냉방과 더위를 오가는 피로가 크게 쌓인다. 실내에서 오래 머물렀다면 밖으로 나갈 때 바로 뜨거운 거리로 뛰어나가지 말고 출입구 근처에서 1분만 체온을 맞춘다. 얼음물 대신 미지근한 물로 갈증을 삭이면 위가 덜 놀란다. 땀띠가 잘 생기는 사람은 샤워할 때 뜨거운 물보다 미지근한 물을 더 길게 사용하고, 마지막 10초는 차갑게 마무리한다. 수성못 데크는 해충이 늘어나는 시기에 조명 근처를 피하는 게 좋다. 벌레가 덜 모이는 어두운 구간이 오히려 걷기 편하다.
겨울에는 손끝과 발끝이 먼저 지친다. 장갑을 두꺼운 것 하나로 해결하는 것보다 얇은 장갑을 두 겹 끼면 가볍고 따뜻하다. 발에는 보온 깔창 하나만 추가해도 체감이 다르다. 뜨거운 국물의 유혹이 크지만, 늦은 밤의 매운탕은 다음날 얼굴 붓기가 생길 수 있다. 대신, 맑은 탕이나 도가니국처럼 염도가 낮은 메뉴가 회복에 맞다. 겨울 밤의 미술관이나 공연장은 외투 맡기는 데 줄이 길어지니, 안에 얇은 패딩을 입고 외투는 무릎에 덮는 식으로 동선을 줄인다.
밤의 도시를 사랑하려면 안전과 예의를 함께 챙겨야 한다. 골목에서 이어폰 볼륨을 낮추는 습관, 횡단보도 신호가 끝나갈 때 뛰지 않는 습관, 쓰레기를 바닥에 두지 않는 습관. 대구는 시민들이 서로 지켜보는 시선이 묘하게 따뜻한 도시다. 시장 상인에게 길을 물으면 보태서 알려주고, 카페 주인은 자리가 없을 때 근처 조용한 곳을 알려준다. 이 친절은 종종 불쑥 찾아오지만, 먼저 조용히 인사하면 확률이 올라간다.
사진을 찍을 때는 인물의 얼굴이 들어가지 않도록 구도를 낮추거나 손을 살짝 흔들어 배경만 담아도 분위기가 충분히 나온다. 특히 북성로와 공구상가 일대는 상인들이 장비를 치우는 시간이 늦어 방해가 되기 쉽다. 멀리서 줌을 당기지 말고, 가까이 가서 눈으로만 보는 편이 낫다.
밤의 계획은 종종 무너진다. 퇴근이 늦어지고, 약속이 길어지고, 몸이 말썽을 부린다. 이럴 때 흔들리지 않는 장치가 필요하다. 하나는 신발. 발이 편한 신발만 신으면 걷기가 늘어난다. 또 하나는 지갑 속 교통카드 잔액. 밤에 잔액 부족으로 가로막히면 귀가 리듬이 깨진다. 마지막은 메모. 오늘 밤 하고 싶은 일 하나만 정해 스마트폰 위젯 상단에 붙여두면, 나머지는 흘려도 괜찮아진다.
대구의 밤은 덜 화려하지만 오래 간다. 작게 움직이고, 조금 먹고, 잠깐 머문다. 그러다 보면 다음날 아침의 숨이 가벼워진다. 도시가 제공하는 선택지는 많지만, 결국 나에게 맞는 두세 가지를 붙잡는 일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두 번만이라도 이 스케줄을 돌리면, 퇴근 후의 대구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밤은 오히려 정돈된다.
밤은 길지 않다. 그러나 길지 않아서 오히려 단단하게 쓸 수 있다. 대구에서는 특히 그렇다. 퇴근 후의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법을 알면, 도시는 같은 불빛 아래 다른 표정을 건넨다.